압구정선착장 가는길
어제 내린비로 시원해질 전망이라지만
눈부신 햇살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만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오늘입니다.
강남에서의 오전미팅후 압구정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갈아신고 뛰쳐나간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압구정골목의 도로와 차와 건물유리창에 반사되는 강렬한 일광을 잔뜩좁힌 미간으로 걸러내며 현대아파트쪽으로 올라가. 횡단보도를 건너뜁니다.
하루종일 실내에서만 생활하는데다 요새 갑자기 늘은 체중때문에 몸이 물기를 머금은듯 무거운지라 따가운 햇빛에 몸이 마르는듯 오히려 반갑습니다.
겅충거리며 뛰어간 맞은편 현대아파트는 조경이 좋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나 마을은 사람들의 손때와 추억으로 세월을 먹고 자라는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빨간 벽돌보도블럭이나 옛뜰같은 작은화단, 담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장이와 소박하게 우아한 하얀 양란, 블럭사이로 내비치는 푸르슴한 돌이끼와 빛바랜 시멘트바닥 사이로 정겨움과 그리움이 묻어있습니다.
어제내린비로 잔뜩 물을 머금은 화단의 흙와 풀냄새가 뜨거운 일광에 기화되는 향긋한 냄새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강으로 밀어냅니다. 후문쪽에서 좌회전을 해서 선착장있는 곳으로 내려가려다 보니 길맞은편 원목 아치로 만들어놓은 산책로가 눈이 띱니다.
지난주 그곳 나무그늘에서 시원하게 오수를 즐기던 사람을 기억하며 길을 건넙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후미진 길이라 길양측에는 졸리는양 차들이 죽 늘어서 주차되어 있습니다. 차를 여기까지 몰고올걸 하는 어리석은 도시인생각이 잠시, 결국 이티가 되어버릴것 같은 불안감에서 시작한 정오의 산책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 이길은 좋더군요
좌측으로는 아파트와 빈도로와 늘어선차, 우측으로는 방음막을 끼고 울리는 올림픽대로의 차소음이 제 오감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총 4m폭 정도로 형성된, 기껏 몇백미터 이어진 풀포기와 나무그늘, 그사이에서 폴짝거리며 뛰며나는 까치, 그리고 빗길에 떨어진 나뭇잎이 절로 썩어가는 흙길이 주는 안도감이라니...폭염으로 비어버린 거리와 산책로를 점령하고 팔과 다리가 가는대로 휘적거리며 걷는 이길, 이순간이 그동안 지치고 삭막했던 일상에서 굶주렸던 바로 그것입니다.
흙내음과 꽃향기에 취하고, 작고 앙증맞은 풀포기에 맘을 빼앗긴채 초록의 절정에서 까맣게 익어버린 나무그늘사이를 걷다보니 어느듯 선착장에 도착합니다...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주차된 차는 즐비한것이, 아마도 선상까페에 들어박혀 시원한 맥주나 들이키고 계신지..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뒤로한채 나무그늘하나 없는 땡볕 뚝방길을 따라 동호대교쪽으로 내려갑니다.
딱딱한 도로를 피해 폭삭이는 풀밭위로 걷는 한걸음앞에서 놀란 방아개비가 풀쩍거리며 뛰어갑니다. 우측 멀리에서 시야에 잡히는 붉은 칸나까지 도랑을 낀 너른 풀밭을 가로질러야하는지름길을 엄두내고 못하고 다리근처까지 내쳐 걸어봅니다.
제초작업이 한창인 아저씨를 지나쳐 동호대교를 타고 현대아파트로 직행하는 계단을 올라서봅니다. 계단위에서 건너다보는 맞은편 한강가는 부드럽게 감싸앉는 옹기종기단층건물들이 열기에 잠겨 아른나른한 풍경을 자아내고잇습니다.
하하..거기 딴에도 강변축에서는 높은지대인지라, 떼지어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가 얼굴로 뛰어들듯 스쳐지나갑니다. 바람도 시원하고 멀리 보이는 풍경도 아른하고..다리를 쭉뻗어 잠깐 드러누워쉬고싶은 충동이 생깁니다만... 엉덩이만 잠시 걸쳤다가 아쉬움을 뒤로한채, 찜해뒀던 붉은 칸나를 안아보며, 잘려나가자마자 마르기 시작하는 풀더미한움큼에 취해가며,, 돌아오는 길- 또다른 일을 재촉하는 전화로 빨라집니다.